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초 패러독스 (문단 편집) === 폭력 문제가 [[남성]]의 문제인 이유 === 우선, 저자는 폭력 문제가 남성들에게는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일", "여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 "남자인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 라고 여겨지곤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미국 [[FBI]] 통계에 따르면 가해자의 99%는 남성이며,[* 국내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짤이 돌기도 했었다. [[성범죄자 알림e]] 어플리케이션 피드백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다 좋은데, 왜 남성 가해자만 공개하는 거죠? 이거 차별 아닌가요?" 라고 불만을 제기하자, 담당자가 "저희는 성범죄자의 성별에 무관하게 모두 공개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변을 달아둔 것이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즉, 성폭력 가해자 인구집단은 극심할 정도의 [[남초]]라는 것.] 특히 폭력 문제의 피해자에서는 남성 역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저자는 '''남성들 역시 폭력 근절을 자신들의 일로서 받아들이고 액션을 취할 때'''라고 강조한다. 즉 폭력 문제의 밑바탕이 되는 원인을 남성들이 스스로 조명하고, 당장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여성들을 위해서,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적극적인 고민과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이 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공론화한다는 것은 남성들 역시 이제부터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며, [[넬슨 만델라]]의 인용구처럼 이제는 폭력적인 남성이 발 붙일 곳이 없게 만들어 줄 것이고 어떤 남성도 그런 남성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적 표명이 된다는 것. 저자는 1장에서 '''폭력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면 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남성들이 문제를 외면하고 그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둘째,'''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의 [[아버지]], [[아들]], [[남편]], [[오빠]], [[남동생]], [[남자친구]]로서 미국 사회에 이미 수백만 명의 남성들이 존재함을 간과하게 한다. '''셋째,''' 폭력의 발생 빈도나 조직화 정도, 발생의 차원은 남성이 가해자일 때 훨씬 높아지며, 남성 또래 문화의 어떤 측면이 폭력을 지원하거나 유발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못하게 한다. '''넷째,''' 폭력을 근절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에 남성들의 협조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을 실질적 방해 요인으로 남겨두어, 늘 피해자 지원금이나 가해자 처벌 같은 이슈로만 옥신각신하게 만든다. 남성 문화와 폭력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논리는 일견 독자들에게 "[[잠재적 가해자|죄책감을 가지세요! 반성하세요!]]" 와 같은 강요처럼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2장에서 저자는 '''남성 독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반성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자라서 죄가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남자니까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p.55). 죄책감과 책임감은 분명히 다르며,[* 저자는 미국 역사에서 노예해방이나 민권운동의 중요한 도약은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감을 느꼈던 백인들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당시 인종주의자들에게 "죄책감에 굴복했다" 는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죄책감은 전혀 반갑지 않다. 예컨대 오클랜드 맨스 프로젝트(Oakland Men's Project)의 빅터 루이스(V.Lewis)에 따르면, 어떤 여성 응답자도 남성들의 죄책감을 통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 고는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설령 남성이 죄책감을 느낀다 해도, 그 죄책감의 이유는 "내가 어쩌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따위가 아니라, "내가 지금껏 폭력 문제에 관망만 해서" 여야 한다는 것. 6장에서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은 남성과 폭력을 연결시키는 메시지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끼며, 이는 '''언론이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방식까지도 바꿔놓았다.''' 언론은 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남성일 경우 '남성' 이 아니라 '사람' 이라는 [[중립]]적 표기를 선호하며, '남녀 모두' 같은 표현이 있으면 '우리 모두' 라는 표현으로 바꾸곤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경향이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라고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여성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상황이 바뀔 수 있을 것인가 같은 궁금증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는 거꾸로, 통영경찰서 여경 뺑소니 사건에 대해 가해 경찰의 성별 표기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도 벌어졌다. 예컨대 [[https://news.v.daum.net/v/20190612093136482|이 기사]] 내용만으로는 가해자가 [[여경]]임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여경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공개된 후 도리어 여경의 이미지에 역효과만 낳았다.] 마찬가지로, '아내를 때린 남편' 이라는 표현 대신 '폭력적인 배우자' 같은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언론은 남성 가해자는 '사람' 으로 보도하는 반면, 여성 가해자는 '여성' 으로 고스란히 밝히는 걸 선호한다. 예컨대 [[2003년]] [[일리노이]] 주 글렌뷰 지역에서 여고생들의 잔혹한 신고식 장면이 폭로되자, 온 언론이 "여학생들의 폭력성" 을 언급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점을 느꼈다는 것이고, 그런 폭력적인 사건은 으레 남성이 가해자이게 마련이라는 상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6장에서 저자는 많은 장을 할애하여 폭력 사건에서 젠더 문제를 가린 결과 사건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 사례를 들고 있는데,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중 집단으로 자행된 사례들은 당시 상황을 현장에서 촬영한 비디오 영상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관계 검증이 가능하다고 한다. (모바일에서는 열람이 어려울 수 있다.) ||<#DDDDDD><:>'''사건명'''||<#DDDDDD><:>'''일시'''||<#DDDDDD><:>'''범죄유형'''||<#DDDDDD><:>'''가해자'''||<#DDDDDD><:>'''피해자'''||<#DDDDDD><:>'''매스컴의 중립적 보도'''||<#DDDDDD><:>'''알려지지 않은 것'''|| ||<:>'''아칸소 존즈버러 총기난사 사건'''||<:>1998.03.24.||<:>[[총기난사]]||<:>군복 차림의 만11세, 만13세 남학생 2명||<:>여학생 4명, 여교사 1명 사망||<:>어린이들이 저지른 불가해한 참극||<:>애인과의 실연으로 인한 복수극|| ||<:>'''1999 [[우드스톡 페스티벌]]'''||<:>[[1999년]][BR],,(30주년 행사),,||<:>[[폭동]], 혼란, [[집단강간]]||<:>수십 명의 남성||<:>불특정 다수 여성||<:>일부 남녀 군중의 일탈[BR]신세대들의 정체성 모색||<:>녹화 비디오에 따르면, 여성의 폭력행사는 미확인|| ||<:>'''푸에르토리코 인의 날 행사 집단 성폭행 사건'''||<:>2000.06.11.||<:>[[집단 성폭행]]||<:>10여 명의 남성||<:>50여 명 이상의 여성||<:>젊은 유색인종 폭력배들의 만행||<:>더위를 식히기 위해 서로 물을 뿌리다가 남성들이 갑자기 광분, 상대방 여성들의 가슴을 움켜쥐고 무자비하게 겉옷을 찢음|| ||<:>'''2002 어린이 연쇄 유괴 사건'''||<:>[[2002년]]||<:>아동 [[유괴]]||<:>불명의 남성(들)||<:>다수의 아동[BR],,대니얼 밴 담(D.Van Dam),,[BR],,새먼다 루니언(S.Runnion) 등,,||<:>어떤 패턴이나 공통점도 없는 연쇄 범죄||<:>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남성이라는 것|| ||<:>'''2002-2003 미군 성폭력 스캔들'''||<:>[[2002년]]~[[2003년]]||<:>[[집단 성폭행]]||<:>이라크 및 쿠웨이트 주둔 중인 다수의 남성 군인||<:>같은 부대에 소속된 동료 여군 10여 명||<:>상급자에 의한 성폭행 사건||<:>실제로는 하급자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여군도 존재했음|| 위의 사례들을 보면 매스컴이 사실의 일부를 보도하지 않는 행태를 저자가 비판하고 있음을 잘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만11세 어린이가 군복을 입고 총을 쏴갈기는, 그야말로 할 말이 없는(…) 사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어째서 남성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우리 사회가 막지 못하는지를 질문한다. 저자는 남성들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부추기게 만드는 것들 중 한 원인으로서 [[음란물]]을 들고 있다. 10장에서 저자는 '''음란물 역시 남성의 문제'''라고 말하는데, 그 사례로서 [[2002년]]에서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 사건을 들고 있다.[* 이 사건은 만16-17세 가해자들이 만16세 피해자 여성을 술에 취하게 만든 뒤, 피해자의 성기에 음료수 페트병(!)을 비롯한 각종 극단적인 [[이물질 삽입]]을 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특히, 가해자들의 변호사는 피해자의 장래희망이 포르노 배우였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는 행위였다고 주장했으며, 언론이 이를 고스란히 받아 보도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전과가 없는 평범한 모범생이었으며, 그 중 한 사람은 해당 카운티 부국장의 아들로 밝혀져 더욱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하다.] 아직 멋모르는 어린 [[고등학생]]들이 그런 행위를 해도 '괜찮다' 는 것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저자에 따르면, [[음란물]]이 그래도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남성들이 죄가 되는지도 몰랐던 가해행위를 저질러서 처벌을 받고 인생길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음란물은 남성들의 건강한 성생활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며, 음란물의 자극적인 시퀀스가 정상적인 성관계 방식이라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남성들이 만약 공감을 표하고 폭력이 문제라고 느꼈을 때에도, 남성들은 자칫 '''[[기사도]] 정신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들은 물론 좋은 남성들이긴 하지만, '나쁜 남자들' 로부터 소중한 내 여자를 지켜주자는 마음은 어디까지나 [[의도는 좋았다]] 수준일 뿐, 그 한계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사도의 논리는 "여자는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 이지만, 사실은 "약자는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 가 올바르며 여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어야 하고, 약자보호는 인류의 당연한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므로 딱히 내세울 만한 대단한 일도 아니다. '''둘째,''' 폭력으로 폭력을 갚는다는 논리에 빠지기 쉽다. 예컨대 "감히 내 [[여동생]]을!", "감히 내 [[딸]]을!" 하면서 흥분하는 남성은 우선 [[샷건]]부터 들고 달려나가기 십상이다. '''셋째,''' 여성이 도움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남성이 자의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레짐작하여 도와주려 하는 것에 가깝다. '''넷째,''' 기사도 정신은 폭력 문제를 자신의 명예에 대한 개인적인 도전으로 여기게 하며, 이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서 통제하려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에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남성이 폭력에 문제의식을 느낄 때, 남성은 '''[[가부장제|가부장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서 보편적인 인류애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